구병모의 분위기가 짙게 묻어나오는 잔혹동화 단편집
*스포주의*
권선징악은 동화 속에만 있는 것
<빨간 구두당>은 착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 나쁜 사람이 벌을 받는 동화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가난한 아이가 성추행을 당하며 공장에서 몸이 닳도록 일하고 끝내 열악한 노동환경에 자살을 하고(화갑소녀전), 헤르메스가 선물한 붕대로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한 젊은이는 질투심 많은 원장 때문에 영원히 마법의 붕대를 잃어버린다.(헤르메스의 붕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더이상 권선징악이 주를 이루는 곳이 아니다. 구병모 작가는 지극히 현실을 반영한 내용으로 동화를 재창조했다.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가위질을 하다 만 것처럼 찝찝하고 알약을 잘못 삼킨 것처럼 뒷맛이 씁쓸하지만 그것이 <빨간 구두당>의 묘미라 할 수 있다.
현실은 찝찝하고 극한으로 치닫을 수 있는 것
현실은 깔끔하게 끝나는 닫힌 결말이 아니다.
내가 벌인 행동이 당신에게 영향을 주고, 당신은 그것으로 인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가 엉킨 실마리처럼 묶여 있는 것이 지금 돌아가는 사회다.
인스타그램의 먹는계정이 편의점 신제품을 미친듯이 보여주면 홀린 듯이 퇴근길에 편의점을 털게 되고, 즐겨보는 쇼츠에 나오는 아이돌이 비현실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어도 그 몸에 본인을 맞추게 된다.
폭식증, 거식증과 같은 식이장애, 다이어트약 부작용으로 인한 정신질환 등 우리는 수많은 미디어 그리고 미디어 뒤에 숨어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다치고 자살하고 죽는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너무 재밌어!
어렸을 때 그리스 로마신화 만화책을 정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빨간 구두당> 곳곳에 장치되어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소재를 발견할 때마다 너무 반가웠다. [헤르메스의 붕대]에서 헤르메스의 수호를 받은 인간 청년을 아스클레피오스에 비유한 장면은 작가의 센스가 돋보인다. 신화에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인간 세상에서 살다가 아버지인 아폴론의 부름을 받아 가끔 올림포스에 초대되었을 텐데, 그럴 때마다 심부름꾼인 헤르메스가 아스클레피오스를 올림포스로 데려다주는 역할을 했을 것 같다. 또한 헤르메스는 친근한 성격으로 모든 신들과 사이가 좋기 때문에 아폴론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지녔을 테고 따라서 [헤르메스의 붕대]는 꽤 신빙성이 있다.
그리고 헤르메스와 아스클레피오스 모두 두 마리의 뱀이 있는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구병모 팬이거나, 잔혹동화를 좋아하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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