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렐은 나이가 너무 많다
책에서 정인을 끊임없이 유혹하는 악마 헬렐은
역사의 산증인답게 지하세계 뱃사공 카론이나 플라톤 각종 히브리어 등 고리타분한 단어를 쓴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악마보다 가혹한 현실
할머니와 단둘이 가난하게 사는 정인의 삶은 중학생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가혹하고 암담하다.
하루종일 폐지를 주워도 1000원을 벌기 어렵고 겨우 일한 햄버거 가게는 사장이 유통기한 지난 패티를 팔다가 식약청에 걸려서 망하기 일보 직전이다.
현실을 외면하기 딱 좋은 상황에 처한 정인에게 헬렐은 정인이 마음속으로 ‘만약에’를 상상한 환상을 보여준다.
퍼스트클래스에서 받는 승무원들의 극진한 대접, 고급 레스토랑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갖는 식사, 제아의 진심어린 위로.
하지만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비행기의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고, 할머니는 정인을 무시한 채 혼자 밥을 먹으며 바이올린을 켜는 제아의 손에는 굳은 살이 없다.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
할머니가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고 있을 때 헬렐은 방심했을 것이다.
드디어 정인의 영혼을 맛 볼 순간이 왔다고.
더이상 안좋아질 것도 없는 상황에 닥친 정인은 놀랍게도 현실을 마주보기로 한다.
해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똑같이 비추고, 비는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 모두에게 내린다.
어떤 이는 팬트하우스에서 누군가의 집이 폭우에 떠내려가는 걸 구경하고,
그 집엔 빨래를 말릴 햇빛조차 없단 말이야.
응달에서 피는 꽃도 있어요.
정인은 드디어 받아들였다. 자신의 환경이 ‘응달’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워낼 거라는 걸. 정인은 가뿐한 마음으로 현실을 살아낼 힘을 얻었다.
햇살이 비치는 날을 기뻐한다는 것
….정인은 빛이 싫었다. 못난 꼴, 못난 마음을 훤히 비추는 빛이 싫었다. 비와 어둠 속에 숨고 싶었다.
나도 중학생때 정인처럼 맑은 날을 고까워 하고 흐린 날을 반가워했다.
따스한 햇살이 몸을 감싸면 행복해질까봐 되려 불쾌함이 들고 비가 오면 진흙덩이처럼 여기저기 붙어있는 우울함이 씻어내려갈 것 같아 마음 편해하던 때였다.
세상의 모든 정인이들이 햇빛이 비치면 기꺼이 밖으로 달려나가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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